오늘 이 땅 한국은 전도가
후퇴하는 계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이 땅에서
최고의 복음화 율을 자랑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라는 곳입니다.
증도는 90%의 복음화 율을 자랑하는 섬입니다.
이 섬은 섬 특유의 미신도, 투전판도, 놀음도 없고
사찰도, 굿당도, 점집도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주말이면 모든 식당이 문을 닫는 곳입니다.
섬 인구 2,200명 거의 전부가
주일에 교회 갈 준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11개의 교회들은 모두 성결교회로
서로를 도와가며
천국의 섬으로 가꾸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자 분이
섬 할머니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 작은 섬에 왜 이렇게 교회가 많지요?”
할머니는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아, 그거야 다 문준경 전도사님 덕분이제”
이 섬의 복음화는 목사님도, 선교사님도 아닌
예수 안에 행복했던 한 여인의
헌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1891년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에서 태어난 문준경 전도사님은
나이 17세에 증도로 시집을 오게 됩니다.
그러나 신랑 얼굴 한번 못보고
혼례를 치른 첫날밤부터 소박을 맞습니다.
이후 20년간 남편에게 버림받은 생과부가 되어
모진 시집살이를 하던 그녀는 우연히
집을 찾아온 전도 부인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후 유명한 이성봉 목사님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 나라에 헌신합니다.
그녀는 성결교단 신학교인 경성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전도 부인이 된 후다시 고향 신안에 내려와
섬들을 나룻배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주민들의 부탁으로 짐꾼, 우체부, 약사,
의사 노릇을 하며 전도를 합니다.
섬마다 개척 교회들이 세워지고,
이 분의 영향을 받은 청소년들 가운데
이만신 목사, 김준곤 목사, 정태기 목사,
신복윤 목사, 이봉성 목사 등
30여명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녀의 나이 59세 되던 해 6.25전쟁 중
공산당원이 그녀를 체포합니다.
그리곤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아, 죽어라"
고 소리치며 몽둥이를 내리쳤다고 합니다.
문준경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기도하며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원의 증언처럼 그녀는
수많은 영혼의 생명을 낳은
거룩한 씨암탉으로 주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 이 섬은 민족의 성지 일만큼
90%이상이 예수를 믿는 천국의 섬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누가 이 비전을 실현하는 주인공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하겠습니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하겠습니까?
여기서부터 안 한다면 어디에서 하시겠습니까?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