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29 00:00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대가가 지불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물질로 지불되지만, 때로는 시간으로 때로는 마음의 고통으로 겪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깊은 만큼 대가도 더 크고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일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야곱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일방적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사랑은 항상 상대적이라서 쓰러지고 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넘어져도 하나님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게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본 게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바라보셨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기에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항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돌을 쪼아 작품을 만드시는 조각가이십니다. 위대한 조각가는 형편없는 돌일지라도 그 속에 있는 참 형상을 마음에 그리며 쪼고 깎고 다듬고 어루만져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보이지 않는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분주히 일하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완성된 것처럼 살고 있지만 아직 반쪽만 다듬어진 상태의 인생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쪽은 아직 무디고 흉할 것입니다. 많은 부분이 미완성으로 전체적으로 불완전한 모습일 게 뻔합니다.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사랑은 택시와도 같은 것이다. 버스는 기다리면 오지만, 택시는 내가 잡아야만 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는 날에는 더욱더 기다리게 되며 내릴 때에는 반드시 탄 것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탄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시간은 곧 헌신과 희생의 시간이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곧 그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글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점점 더 완성에 가까운 모습으로 조각된다는 것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만드실 것입니다. 성격이 모난 사람은 성격을, 언어가 뿔난 사람은 언어를, 손버릇이 거친 사람은 손버릇을,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은 마음을 더 건전하고 온전하게 조각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 없는 인생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비바람이 치고 창수가 나면 무너지고 떠내려갑니다. 하지만 말씀 위에 짓는 인생은 어떠한 고난이 찾아올지라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반석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줍니다. 어떤 문제도 풀 수 있고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은 생명이며 능력이며 신앙생활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7-10),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노래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런 주님만 생각하면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온전한 사람으로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출처/창골산...홍종찬목사(사랑에빚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