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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섬김의 엘림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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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5-10-28 00:00

20년 동안 정신장애를 앓다가 회복된 사람의 이야기.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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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미쳤다라고 표현이 되는 정신이상(장애)을 20년 동안 앓다가 회복된 사람의 얘기입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마을에 정신 장애를 가진(앓던)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밭이나 산에서 일을 하실 때면 우리또래의 조무래기(어린이)들이 쫓아가서 놀려대기를 좋아했습니다.

 

“경진아(그 아저씨의 이름). 경진아. 노래한번 불러봐라. ‘술 잘 먹는 아들에게’ 노래 불러봐라. ‘김일성 장군 노래’ 불러봐라. ‘인공나라(북한) 애국가’ 불러봐라.”하고 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아저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삽자루나 지게 작대기를 옆구리에 끼고 기타(guitar)타는 흉내를 내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술 잘 먹는 아들에게 술 못 먹게 하느라고...

  장백산 줄기줄기... 김일성 장군...아침 해는 밝아라... 인민의 이 영광... ” 등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대는데, 목소리가 청아할 뿐만 아니라 퍽 진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때마다 곧 그의 부인이 나타나시곤 했는데요, 좀 특이한 방법으로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두 손을 허리에 받혀 괸 자세로 준엄하게 “전 경진 병사! 맡은바 소임은 다 하셨는가?”

그러면 경진이 아저씨는 벌떡 일어서서 군인자세(부동)를 취하면서 “예.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휴식 끝내고 작업에 복귀하라.”

아저씨는 후다닥 뛰어 가서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그 모습이 우스워서 또 까르르 웃어댑니다.

“얘들아. 우리 아저씨가 지금 많이 아프시거든. 아저씨는 너희들이 누군지를 못 알아보신단 말이다.

너희들 부모님들한테 얘기 들어서 잘 알지? 제발 부탁인데 아저씨를 놀리지 말아다오.”

아주머니는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듯 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사정조로 말씀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짓궂은 우리 어린이들은 막무가내로 그때뿐이었는데요,

당시의 어른들에게서 들은 그 아저씨의 사정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이 발발했던 해에 그 아저씨는 갓 스무 살이었고 그 해 봄에 결혼을 했었답니다.

북한 공산군은 6월에 서울을 점령하고 짓 쳐 내려와서 7월 중순에 목포에 까지 들이 닥쳤습니다.

점련군인 그들은 여러 가지 만행을 저질렀는데,

그 중의 한 가지가 청년들을 붙잡아다가 자기네 인민군대에 편입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경진이 아저씨도 그 때에 붙잡혀 갔다고 했습니다.

 

9월 초에 우리 국군이 진격해 오자 그들은 허겁지겁 달아났는데,

인민군이 된 경진이 아저씨도 함께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복이 되고 사회 질서가 안정되어가던 11월 달의 어느 날 그가 홀연히 돌아왔습니다.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반가이 맞이했습니다만 정신이상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인민군대를 따라서 갔었는데

어느 경로로 어디까지 갔었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기억상실과 정신 이상 상태로 어떻게 고향을 찾았을까하는 의문이었지만,

본인이 기억을 못 하니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자 겨우 자기의 아내를 알아보기는 했으나 군인(인민군) 대장인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장대에다 붉은 천(헝겊)을 달아 묶어서 세워 놓고는 인민 군대에서 배운 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렷! 인공(인민 공화국-북한)깃발에 대하여 경례.

인공 애국가(북한 國歌의 이름도 우리와 같이 애국가라고 합니다.) - 아침 해는 밝아라...

김일성 장군의 노래 - 장백산 줄기줄기... ” 등의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의 아내가, “이제 인공 국가는 망해 없어졌고 대한(민국) 국가가 섰으니

그런 행동은 안 해도 된다."고 말렸습니다만 듣지 않고 그런 행동을 거의 매일 되풀이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조처를 생각해 냈습니다.

마을의 제대군인 아저씨한테서 군인 모자를 얻고 이장님에게 부탁을 해서 태극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애국조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대에다 태극기를 달아 세우고 군인 모자를 쓰고서는 남편을 향해서 호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려! 태극기에게 경례.

애국가 봉창(당시에는 받들어서 부른다는 뜻으로 봉창이라고 했습니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우리의 맹세 -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나는 국방군(국군을 당시에는 국방군이라고 했음) 대장이고 너는 병사다. 너는 내 명령을 들어야한다. 오늘은 뒷산 밑의 메밀밭 김매기 작업을 해라. 끝나면 보고 할 것.” 이런 식의 의식을 늘 했습니다.

 

당시가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돌아온 지 6~7년이 지났지만,

남편의 의식(정신)상태가 여전히 이상 증세였기 때문에 그렇게 했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남편이 미쳐서 돌아 왔으니 아내도 따라서 미쳤구먼.” 하고 흉을 봤었지만 차차 모두들 이해를 했습니다.

 

그 후에 나는 외지에서 살았습니다.

’70년도는 6.25전쟁이 있었던 해로부터 꼭 20년이 되는 해 인데요, 그 해에 나는 군에서 전역(제대)을 했습니다.

광주가 집이었지만 고향마을의 친척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갔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그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초등학생 때 이후 13~14년 만이었는데요,

내가 군대식의 경례로 인사를 했습니다.

“경진이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저 제대했습니다.”

아저씨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옆에 계신 부인에게 묻더군요. “이 청년이 누구신가?”

“아~ 저 꼬작집(마을의 맨 위 - 꼭대기라는 뜻임) 최 씨 할아버지네 손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아저씨가 다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뭔가 생각이 난다는 듯이 빙긋 웃으시며 내 손을 잡고 말씀 했습니다.

“아! 네가 바위로구나.(내 어릴 때의 별명이 바위였습니다.) 그래 내가 너를 업어주기도 하고 퍽 예뻐했었지?

벌써 군인이 되었네...” 무척 감격해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저씨는 제 정신을 찾으셨다고(돌아 왔다고) 합니다.

 

내가 만나 뵙기 그 전 해의 어느 날,

술에 취해서 깊이 잠이 들었었는데 꼬박 3일 동안 잠을 자더랍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자 평소와 다르게 행동을 하더라는 군요.

“어! 여기가 어디지? (자기 부인에게)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어머니는 어디 가셨나요?” 등등을 묻는데, 매우 차분하고 조용한 음성이었으며 눈빛이 선명하게 밝더랍니다.

그의 아내는 직감적으로 “아! 이 이가(남편이) 제 정신으로 돌아왔구나.

정신이상 증세가 풀렸구나.”하는 것을 느꼈었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요?

그 아저씨는 20년 동안이나 정신 이상 상태로 계시다가 어느 날 문득 제 정신으로 돌아오신 겁니다.

그날 나는 그 아저씨와 오래도록 참으로 긴 얘기들을 나눴었습니다.

 

그 당시에 어느 외국 작가(이름은 잊었습니다.)가 지은 소설 '마음의 행로'라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그와 흡사한 사실이 현실에서 생겨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글을 보면서 이단에게 정신을 빼앗긴 불쌍한 교우들이 깊은 수렁에서 나오기를 소원해 봅니다.-일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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